2013년 5월 2일 목요일

진주 (하시용 목사님 칼럼)

하시용 목사님께서 4월 25일 미주한국일보에 올리신 칼럼입니다. (클릭)

진주는 유사이래 귀한 보석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주는 아픔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딱딱하고 커다란 이물질이 몸 속으로 파고들면 조개는 체액을 동원해서 그것을 감싸 안습니다. 자기 안에 침입한 이물질을 밀어내지 못했을 때 마지막으로 발휘되는 조개의 생존본능이 진주라는 귀한 보석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진주는 귀한 보석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풍깁니다. 그러다 보니 진주를 소재로 삼은 문학작품이나 노래가 꽤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살리너스 태생이면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존 스타인벡의 <진주>라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는 키노와 주애너라는 가난한 부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멕시코 만의 작은 마을에서 조개잡이를 하면서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전갈에 쏘입니다. 온몸이 퉁퉁 붓고 고열에 시달리는 아기를 둘러업고 의사를 찾아가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키노와 주애너는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진주조개잡이를 떠납니다. 아내 주애너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이라도 된 듯이 바로 그날 갈매기알 만한 진주를 발견합니다. 횡재를 한 것입니다. 이제는 의사가 집에 찾아와서 아기를 고쳐줄 것입니다. 진주를 팔면 돈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결혼식을 올릴 참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학교에 보내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게 되었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착하고 순진한 부부를 세상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를 따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집에 도둑이 듭니다. 집을 통째로 불태워버리기도 합니다. 남편 키노는 온 몸이 피범벅이 되면서 진주를 지켜냅니다. 진주를 팔기 위해서 중개상들을 찾아 가지만 헐값에 구입하기로 단합이 끝난 뒤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 키노의 성격이 점점 포학해집니다. 눈에 살기가 돕니다. 진주를 지키기 위해서 총도 준비합니다. 가족들을 위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예전의 행복은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집안에 가득합니다. 아내 주애너가 차라리 진주를 다시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진주에 마음을 빼앗긴 남편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도시로 가서 진주를 팔 작정을 하고 밤중에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진주를 노리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습니다. 남편 키노가 이들과 마지막으로 격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적들이 쏜 총에 그만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남편이 제정신이 듭니다. 가족을 위해서 진주에 집착했건만 그것은 아들을 잃는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죽은 아들을 메고 고향마을로 돌아온 키노와 주애너는 바닷가로 가서 진주를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작가 스타인벡은 그 대목에서 진주를 놓고 “흉측했고 어두침침했으며 악성 종양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행운을 가져올 줄 알았던 진주, 팔자를 고쳐주길 바랬던 진주, 아니 진주를 팔아서 아들에게는 공부를 시키고 뭔가 근사한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었던 젊은 부부의 꿈은 이렇게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작가 스타인벡이 자신의 작품을 우화(偶話)라고 불렀듯이 그의 소설 속에서 인생의 단면을 발견합니다. 우리들도 진주를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삶을 역전시켜주고,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멋지게 복수할 수 있는 진주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서 진주를 찾아 동분서주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놓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주를 찾고 보면 자신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진주를 지키려다가 자신도 망가지고 아들까지 잃어버린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우리들도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생길 중간 중간에 잠시 멈춰서 자신이 현재 추구하는 것, 애지중지하면서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점검해야 합니다.

손에 진주를 들고 있어도 그것이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얼른 바닷가에 던져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라도 자신의 초심을 무너뜨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주 자체에 관심을 쏟으며 살다 보면 구약성경 전도서 기자가 이미 간파했듯이 허무한 인생이 되기 십상입니다. 진주보다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의 아픔을 본받기 원합니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고난을 끝까지 견뎌내면서 값지고 고귀한 진주를 내면 깊은 곳에서 빚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4월 29일 섬김이 모임


 4월 29일 섬김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이번주는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15장 새로운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이성진 형제님께서 생명공학 기술과 문제들을 요약해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생명공학 기술을 어디까지 이용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부분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나와있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모호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분명히 세워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과연 그것들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기쁜 것들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원리를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갑자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사후의 세계를 인간이 침범하게 되면서 결국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것을 돌려놓으시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요. 저희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과 금하신 것을 알고자 노력하고 세상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소그룹으로 모여서 저번주에 배운 적용을 실습하고 지금까지 8주에 거쳐서 배운 귀납적 성경공부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각자 소그룹에서 귀한 나눔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4월 26일 전체 모임


 4월 26일 전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이번 전체 모임은 귀납적 성경공부 마지막 시간으로 하시용 목사님께서 관찰-해석-적용 중의 마지막 단계인 적용에 대해 강의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적용은 귀납적 성경공부의 꽃이고 결국엔 우리 삶에 적용을 하기 위해서 귀납적 성경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관찰과 해석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 나머지 적용 단계에 와서 지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저희들을 가르치고 저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용의 원칙에 대해서 SPECK과 4P's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SPECK (Sins, Promises, Examples, Commands, Knowledge)을 중심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또 적용할 때 4P's (Personal, Practical, Possible, Progressive)의 원칙을 따라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원리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깊은 묵상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저희들이 하나님 말씀을 소리 내어서 읽고 정독하고 묵상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소그룹으로 만나서 관찰-해석-적용 단계 중 적용을 실습하고 지금까지 배운 귀납적 성경공부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깊은 나눔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