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6일 화요일

3월 25일 섬김이 모임

3월 25일 섬김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이번주는 성금요일인 관계로 금요 모임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면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오은규 형제님의 인도로 John Stott 목사님의 책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여자와 남자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경이 남녀가 평등하지 않던 시대의 문화적 배경 안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몇 가지 성경구절을 놓고 이것을 현대 사회에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 메세지가 무엇인지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때의 문화적 배경과 지금의 배경이 워낙 다르고 그 때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때 어려운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제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불립문자'가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어요.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진리는, 그리고 성경을 관통하는 핵심 메세지는 '불립문자'처럼 문화적 배경을 벗어나서 문자를 초월해서 존재함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부족한 저희들과 부족한 세상을 생각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한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보통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남성의 이미지를 투영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영이시고 성경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로 묘사가 되었지요. 소설 '오두막'에서 하나님을 뚱뚱한 흑인 아주머니로 등장시키는데 제가 처음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은 은연 중에 제가 하나님을 남성의 이미지로 굳혀버린 편견 때문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들이 성경을 저희들의 편견이나 문화적 배경에 갇혀서 해석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고 성경을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성금요일로 KCF 모임을 가지지 않습니다. 각자 속하신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은혜로운 사랑을 묵상하시면서 구별된 시간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3년 3월 24일 일요일

3월 22일 전체모임


3월 22일 전체 모임이 University Church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모임은 최운이 형제님, 성하영 자매님의 첫째딸 최나연 어린이의 첫번째 생일을 같이 축하하는 자리로 최운이 형제님과 성하영 자매님께서 풍성하게 저녁과 후식, 음료수, 차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모든 메뉴를 꼼꼼히 준비해주신 최운이 형제님과 성하영 자매님 감사드립니다.


최나연 어린이도 기분이 좋은지 예배 내내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오윤하 어린이도 마침 이 날이 생일이어서 같이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현옥 자매님과 전재연 자매님의 인도로 찬양을 나누고 하시용 목사님께서 귀납적 성경공부 두 번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첫번째 강의에 이어서 관찰 - 해석 -적용 중 관찰 단계를 이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문학 양식 살피기, 문맥 살피기에 이어서 구조 분석, 본문 탐구, 해석을 위한 관찰 질문 작성, 제목, 분위기, 내용 등을 자신의 말로 요약하는 과정을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구조 분석 과정에서 본문을 많이 읽고, 본문 탐구 과정에서 work sheet을 만들어서 연애편지를 대하듯이 호기심을 가지고 본문을 대하는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소그룹 시간 뿐만이 아니라 큐티 시간에도 연습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연애편지인데 너무 쉽게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더 열심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특별히 최나연 어린이 돌잔치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신 최운이 형제님, 성하영 자매님, 어린이들 돌보아주신 형제님들, 칠판 운반하고 고정하시느라 고생하신 형제님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은 성금요일로 모임이 없습니다. 각자 출석하시는 교회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시면서 감사하시는 구별된 시간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3년 3월 20일 수요일

3월 4일 섬김이 모임

3월 4일 월요일 섬김이 모임이 University Church에서 열렸습니다. 이번주는 전체 모임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수련회 follow-up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수련회를 통해서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관심을 보이신 귀납적 성경공부 강의와 practice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수련회를 통해서 일어난 귀납적 성경공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2월 25일 섬김이 모임

2월 25일 월요일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 어두운 사진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 2월 22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수련회를 되돌아보는 모임으로 수련회 follow-up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섬김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KCF 수련회를 통해 좋았던 점들과 개선할 점들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에 감사함을 나누었습니다. 저희들의 부족함을 놀라운 방법으로 풍족히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회를 위해 고생하신 섬김이분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2월 22일 - 23일: KCF 수련회

2월 22일 금요일 저녁부터 23일 토요일 저녁까지 Redwood Glen에서 '일상 속의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KCF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저희 공동체가 하나 되는 감사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22일 금요일 저녁은 하시용 목사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Already but not yet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내재성과 초월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구약과 신약에 드러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백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해서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녁 집회 일정이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지만 밤 늦게까지 "불금" 교제를 통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23일 아침에는 일상 중에서 특별히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실현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동성 형제님께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중심으로 일과 안식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정의해 주시고 각자 다른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실현해 나가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이 각자 계신 곳에서 고민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가시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도 하고 저희들의 마음도 많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어서 조별 나눔 시간에는 고동성 형제님께서 준비해주신 질문들을 가지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지만 조원분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23일 오후에는 한규원 자매님의 인도로 여러 가지 게임을 했습니다. 조별로 노래와 율동 만들기, 스피드 퀴즈, 성경 인물 행동으로 표현하기 등등 재미있는 게임들을 많이 했습니다. 틈틈히 산책하시고 배구나 탁구 등의 운동을 하시는 분들 모습도 보였습니다.
23일 저녁에는 하시용 목사님께서 공동체 속에서 특별히 KCF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실현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저희 공동체가 귀납적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영적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저희 삶, 공동체, 세상 가운데 실현하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KCF 공동체의 본질을 섬김이분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들이 공유하고 여러 가지 궁금증 등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면서 공동체로 하나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련회를 위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모든 과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오래 지속하기를 소망합니다.

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사순절에 대해서 (하시용 목사님이 미주한국일보에 올리신 글입니다.)

사순절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링크)


깊은 은혜 체험하는 경건 훈련기간 사순절

입력일자: 2013-02-21 (목)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Lent)기를 지나고 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전주일 까지이다. 교회가 지키는 사순절의 전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신앙에 도움을 줄 것 같아 하시용 목사(SF참빛교회 담임)가 보내온 자료를 통해 소개한다.

1. 사순절이란 무엇입니까?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데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에는 금식을 행하고 말과 행실을 조심하였습니다. 중세에는 사순절 기간 동안 결혼식을 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면서 깊은 은혜를 체험하는 경건의 훈련 기간입니다.

2. 사순절의 기원은 언제부터인가요?
사순절은 물론 교회가 지키는 전통들의 기원을 2000년 교회사 속에서 정확히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자연스레 지켜지다가 전통으로 받아들여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그리스도인들은 금식을 행하였습니다. 특히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금식을 하면서 행실을 경건히 하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초기의 사순절 전통은 이처럼 세례교육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부터 금식을 시작하기도 하였고, 부활절 전 한 주간(고난주간)을 금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325년 니케아공회 이후 사순절이 교회의 공식적인 절기가 되었습니다.

3. 왜 40일을 지킵니까?
일설에 의하면 처음에는 1년 365일의 십 분의 일인 36일 동안 금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점차 40일을 사순절로 지키게 되었답니다. 40일이라는 날 수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간 금식하신 것(마4:2, 눅4:2), 시내산에서 모세가 40일간 금식한 것 (출24:18, 신9:9), 그리고 엘리야가 40일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한 것(왕상19:8)등에서 유래하였다고 봅니다. 물론 성탄절과 마찬가지로 이교도의 전통을 교회가 가져왔다는 견해도 있지만 성경적인 배경 속에서 40일의 전통을 찾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란 무엇입니까?
재의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째 날을 일컫습니다. 주후590-604년까지 로마의 감독이었던 그레고리 대제에 의해서 재로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긋는 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회개하러 나오는 사람들의 머리에 재를 뿌리던 관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재”는 성경에서 회개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회개의 공적인 선포로 머리에 재를 뿌려 준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지난 해 종려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를 태워서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풀과 꽃이 잠시 후면 마르고 시들 듯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도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지고, 한 줌의 흙에서 왔던 우리도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엄숙한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점검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을 “성회 수요일” 또는 “속죄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5. 사순절 기간에는 왜 주일이 빠지나요?
기독교에서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신 축제의 날이 주일입니다. 따라서 축제의 날인 주일은 사순절의 날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순절이 고난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6. 왜 부활주일이 해마다 틀립니까?
부활절은 대개 3월 22일부터 4월25일 사이에 옵니다. 교회사를 보면 초대교회가 동방(안디옥중심)과 서방(로마중심)으로 나뉘어 발전합니다. 기독교는 대개 서방의 전통을 따랐지만 동방의 전통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3세기까지 부활절을 두고 동방과 서방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동방교회들은 유월절 성만찬 후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들어서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계산하는 음력으로 부활절을 계산하였습니다. 반면에 서방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안식 후 첫 날, 즉 주일임을 강조해서 부활절은 언제나 주일에 지켰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주후 325년 니케아공회에서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됩니다. 즉,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보름달) 후 첫 번째 주일로 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동방교회의 음력전통과 서방교회의 주일전통을 모두 만족시킨 결정입니다. 음력을 기준으로하고 양력의 주일을 부활절로 정하다 보니 부활주일이 해마다 바뀌는 것이랍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하시용 목사님 칼럼)

2월 21일자 미주한국일보 하시용 목사님 칼럼입니다. (링크)

신약성경 마가복음에는 여리고라는 동네에 살던 한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소경은 “바디메오”입니다. 성경본문은 친절하게도 이것이 그의 이름이 아니라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줍니다.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소경 바디메오 – 그는 이름도 없이 아버지의 성함으로 불렸습니다. 여리고는 상업이 발달해서 세무서가 있을 정도의 도시였기에 길목을 잘 지키면 수입이 꽤 괜찮을 수도 있었겠지만 소경 바디메오의 실존은 말 그대로 불쌍한 인생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에는 소경으로 태어나면 부모의 죄로 또는 태아인 자신의 죄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지가 많은 중동 지역에는 눈병이 깊어지면서 중간에 시력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저주받은 인생으로 취급 당했습니다. 바디메오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했다고 성경본문이 전합니다. 길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입니다. 이처럼 바디메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그들이 던져주는 동전소리에 일희일비하는 타인의존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여리고에 들어오시면서 소경 두 명을 고치셨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여리고 세무서장 삭개오를 찾아가셨습니다. 눈은 볼 수 없지만 귀는 밝았을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저절로 들려왔을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 있으니 적선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귀동냥도 즐겼을 테니까요. 그런 예수님이 많은 무리들과 함께 자기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입니다. 운수 대통한 날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조금씩만 적선을 해줘도 며칠은 거뜬히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메오는 그 이상을 보았습니다. 물질적인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지긋지긋한 죄의 고리와 외로움 그리고 깜깜한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입니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은 바디메오가 크게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절한 외침입니다. 헬라어 본문은 바디메오의 외침이 폭탄이 터질 듯한 탄성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울부짖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지시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소경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멈춰서 그를 불러내십니다. 바디메오의 외침이 예수님의 귓전에 아니 마음에 전달된 것입니다. 소경은 겉옷을 두고 뛰어 나갑니다. 무엇을 해주기 원하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보기를 원한다고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시면서 소경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바디메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마가복음에서 소경 바디메오가 눈을 뜨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는 예루살렘 입성 바로 직전에 행한 기적입니다. 바디메오가 외친 “다윗의 자손 예수여”는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로 오셨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안에서 소경 바디메오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디메오의 외침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그 유명한 외마디 기도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가 나왔습니다. 
바디메오,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외마디 기도는 교회사 2천년 내내 가장 훌륭한 그리고 애절하고 진솔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존재감 없이 깜깜한 인생을 살던 바디메오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2013년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소경 바디메오처럼 각자의 인생길에 앉아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이 필요한 인생들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낼 생명의 빛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향해 외쳐 부르짖기 원합니다. 짧지만 간절하고 예수님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를 올려 드리기 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키리에 엘레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