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용 목사님께서 7월 24일자 미주한국일보에 올리신 칼럼입니다.(링크)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미군군목 윌리엄 커밍스는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there are no atheists in
foxholes)”는 말을 남겼습니다. 머리 위에서 총탄이 오가고 언제 적군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참호 속에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월적인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에 미국인들의 예배참석률이
실제로 5% 이상 급상승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전쟁이나 테러 또는 쓰나미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전쟁터 참호 속은 아니라도 질병이나 실패 등 개인적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경험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월적인 신을 찾습니다.
그런데 위기 가운데서만 하나님을 찾는 참호신앙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실제로 9.11 테러 직후에 교회를 찾던 많은 발걸음들이 두
달도 되지 않아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심지어 테러가 일어나기 1년 전보다 예배 참석률이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처럼 참호
신앙은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참호 속에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참호 속에서 목숨을 구해주신다면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서원하면서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밖에 없다고 서슴없이 고백합니다.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커밍스의 말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참호 밖을 나오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됩니다. 그 이전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참호신앙 또는 참호기도는 흔하게 발견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SOS를 칩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서 911을 부르듯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하고, 교회활동에도
앞장서면서 말 그대로 열성분자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이 지나가면 어려움과 더불어 신앙도 쓸려 보내고 소위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곤 합니다. 전형적인 참호 신앙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관계적 언어를 통해서 제한적으로 설명될 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하나됨은 결국 일체 되신 관계를 통해서 우리 안에 나타납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신 것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안에 거하는 것’이 곧 관계입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대표적인 참호신앙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9명의 나병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10명의
나병환자가 소리치면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셔서 10명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10 명 가운데 1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지 나머지 9명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10명 중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참호신앙이었습니다.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도 그때뿐인 신앙, 은혜를 망각하는
부끄러운 신앙이 꽤 많이 있습니다. 참호 속에 있을 때만 하나님 안에 있고, 참호 밖을 나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참호신앙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나와서 울며불며 기도하지만, 어려움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부끄러운
신앙입니다.
이제는 참호신앙을 지나서 한결 같은 신앙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기분이 좋을 때나 상할 때나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같으신 하나님께 상록수와 같은
신앙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질병에서 고침 받고 예수님을 찾아온 그 한 명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도 크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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