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8일 월요일
2014년 9월 30일 화요일
광고: BBQ 전체 모임 및 친교
KCF 식구들 모두 이번 학기도 각자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그래서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광고! 있습니다.
첫학기 바베큐 모임을 Stanford West에서 가지려고 합니다.
날짜: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시간: 오전 11시 30분
장소: Stanford West (아래 지도 참조)
많이 참석하셔서 맛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아름다운 교제 나누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문의 사항은 김현수 간사<hskim1127@gmail.com> 에게 해주시구요.
그럼 모두 그 때 뵙겠습니다. 꾸벅!
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12월 20일 전체모임: 신약 속의 부르심
12월 6일 전체모임: 구약 속의 부르심
구약 속 부르심의 원리에 대해 목사님께서 간결하게 정리해주셨는데, 이 원리들을 묵상하면서 부르심에 민감해지도록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연말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행동을 위한 부르심
3. 하나님 말씀 선포를 위한 부르심
4. 다양한 부르심 (카리스마)
5. 거룩한 부르심 (개인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11월 15 일 전체모임: 거룩함으로의 부르심
예전에 신랑에게 해준 이야기인데, 대기업 회장이 썼던 자서전에서 그 분이 성공하기 위한 비결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 어른들의 말에 경청했다는 것이라고 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상 풍파를 먼저 겪으신 인생과 신앙의 선배들, 그분들의 조언에 겸손하게 귀기울이는 것은 삶을 의미있고 멋지게 살아가는 데에 탁월한 지혜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할 수 있으리라는 theory는 그 실천이 너무너무너무 어렵지만, 그래도 위로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실천이 어려워서 피땀 흘리며 기도할 때가 있었다니까....저희가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건 당연한 거겠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고 다시 넘어져도 다시 일으킴 받아 그 분께 나아갈 때에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걸 기억해야할 것 같습니다.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11월 1일 전체모임: 진리로의 부르심
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10월 18일: 개강 예배 및 효근 형제 &은미 자매 가정 환송회
지난 금요일 대모임에는 개강 예배가 있었는데요. "부르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의 씨앗 교회 안상현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학창시절 친구를 회상하시면서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기가 동경하는 바,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영화배우가 맡은 역할을 흔히들 페르소나라고도 하지요.
부르심이라는 것도 우리가 인생이라는 긴 영화 안에서, 하나님이라는 감독님의 지위 아래에 배우로서 어떤 페르소나(분신)를 만들어가냐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목사님께서는 우리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부르심에 대해 누가복음 19장 예루살렘 입성하는 과정에서 보어지는 나귀의 모습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셨어요.
1.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고 닮아가야함
나귀가 준비되었음을 알아보신 것은 예수님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매어있는 인생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나귀를 풀어주시고 그를 불러주신 인생으로 높여주셨지요.
나귀가 매어있던 그 현장되는 마을이 부르심을 받는 곳이고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바로 부르심을 찾아 따라갈 현장입니다.
2. 부르심의 본질,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은 태도이다.
나귀가 풀렸을 때 그저 순수히 따라갔음을 주목해야합니다.
3. 부르심은 신실함, 최선다함을 통해서 완성된다.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발현되도록 도전하실 때가 있는데, 도전에 응답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자신의 은사에서 신실하게 부르심에 순종하겠다는 책임을 보여주는 나귀, 그 신실함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겸손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정말 하나하나 머릿속에 꼭꼭 기억해놔야할 것 같아요. 불과 몇일 전에 들은 말씀인데도 하루하루 지나가다보면 금방 흐릿흐릿해지는 나약한 제 모습...으으...ㅠㅠ 오늘 블로그 쓰면서 다시 한번 다잡아봅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오랜기간 KCF와 함께 해주신 효근 형제님 그리고 은미 자매님, 소은, 시은이네 환송회가 있었어요. 헤어짐이 많이 아쉽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더 멋진 곳에서 더 기쁜 인연으로 재회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기에 모두들 떠나시는 길을 축복하며 형제자매님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10월 5일: 똘순이 베이비 샤워
2013년 10월 4일 금요일
10월 4일 전체 모임: 전집사님의 유럽 여행기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9월 20일 전체 모임: 요한복음 정리 4부: 그들은 누구인가?
일단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나는 남 이스라엘 사람들과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로 다가가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은 편견이나 선입견, 낯선 이웃에 대한 벽을 허물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물음표와 함께 등장했었던 낯선 이웃은.....? 바로 유대인들인데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으나 막상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자기의에 빠져버린 유대인들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오늘 MPPC 교회에서의 John Ortberg 목사님의 설교말씀도 Up (하나님과의 관계)과 In (교회 및 공동체 커뮤니티)에 이어 3번째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가야할 균형 OUT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셨는데 KCF 대모임에서 마지막으로 던져졌던 메시지, 타자에 대한 관심, 인종과 성을 초월한 관심에 대해 또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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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루었다! ㅎ1년이라는 시간을 조금 넘어 요한복음 공부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
요한복음 마친 뒤에는 이제 다니엘서를 한다고 하네요. 요한복음 공부를 도와주셨던 하목사님께서 짧은 안식의 시간을 가지시고 ㅎ 따라서 10월 4일 대모임에는 전집사님께서 성지순례 이야기를, 그리고 10월18일에는 안상현 목사님의 특강과 함께 개강 예배가 있다고 합니다.
참참참! 10월 5일에는 똑순이의 베이비 샤워도 있다고 해요 :-) 저희 부부는 아마도 참석할 것 같은데, 블로그에 좋은 시간 담아서 올리도록 할께요-ㅎ 이제 또 한주가 시작하네요.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고 승리하는 한주 되세요-
2013년 8월 26일 월요일
8월 23일 전체 모임: 요한복음 정리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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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인도 해주시는 현수형제님: 이번 모임에선 의자 세팅을 앞쪽으로 옹기종기 붙여보았습니다. |
요한복음 정리 1부: 나는 누구인가?에 이어서 지난 대모임에서는 2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 하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삼위일체. 혹은 성삼위 하나님- 성부.성자.성령님에 대해 조금 더 이해를 하고자 하는 노력을 일환이었는데, 이 부분은 저를 포함한 많은 초신자들, 어쩌면 많은 믿음의 선배들까지도 참으로 오묘하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이지요.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불가피하게 인간적일 수 밖에 없는) 개념정리가 지어지는 역사 및 그에 따라 생성되는 이론 분파 (삼신론. 종속론.양태론) 그리고 그 안에서 저희가 기독교인으로 취하고 혹은 경계해야하는 것들에 대해 쭉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부분은 목사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삼위 하나님의 관계처럼 우리도 공동체로서 하나로! 균형있게! 충만하게! 나아가야한다는 것 같아요. (완전 강조 표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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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9월 생월자 생일파티 :-) |
제 신랑 포함해서 8월 9월 생월자들 생일 축하도 있었네요. 조촐하지만, 서로를 축복하는 모습 아름다워요. 규원언니가 준비해준 케이크도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으아- 또 먹고 싶당-
참호신앙 (하시용 목사님 칼럼)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미군군목 윌리엄 커밍스는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there are no atheists in foxholes)”는 말을 남겼습니다. 머리 위에서 총탄이 오가고 언제 적군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참호 속에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월적인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에 미국인들의 예배참석률이 실제로 5% 이상 급상승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전쟁이나 테러 또는 쓰나미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전쟁터 참호 속은 아니라도 질병이나 실패 등 개인적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경험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월적인 신을 찾습니다.
그런데 위기 가운데서만 하나님을 찾는 참호신앙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실제로 9.11 테러 직후에 교회를 찾던 많은 발걸음들이 두 달도 되지 않아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심지어 테러가 일어나기 1년 전보다 예배 참석률이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처럼 참호 신앙은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참호 속에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참호 속에서 목숨을 구해주신다면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서원하면서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밖에 없다고 서슴없이 고백합니다.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커밍스의 말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참호 밖을 나오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됩니다. 그 이전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참호신앙 또는 참호기도는 흔하게 발견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SOS를 칩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서 911을 부르듯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하고, 교회활동에도 앞장서면서 말 그대로 열성분자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이 지나가면 어려움과 더불어 신앙도 쓸려 보내고 소위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곤 합니다. 전형적인 참호 신앙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관계적 언어를 통해서 제한적으로 설명될 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하나됨은 결국 일체 되신 관계를 통해서 우리 안에 나타납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신 것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안에 거하는 것’이 곧 관계입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대표적인 참호신앙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9명의 나병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10명의 나병환자가 소리치면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셔서 10명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10 명 가운데 1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지 나머지 9명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10명 중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참호신앙이었습니다.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도 그때뿐인 신앙, 은혜를 망각하는 부끄러운 신앙이 꽤 많이 있습니다. 참호 속에 있을 때만 하나님 안에 있고, 참호 밖을 나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참호신앙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나와서 울며불며 기도하지만, 어려움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부끄러운 신앙입니다.
이제는 참호신앙을 지나서 한결 같은 신앙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기분이 좋을 때나 상할 때나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같으신 하나님께 상록수와 같은 신앙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질병에서 고침 받고 예수님을 찾아온 그 한 명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도 크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
2013년 8월 23일 금요일
8월 9일 전체 모임: 남근형제. 수경자매님 송별회
일단 요한복음 정리 1탄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하시용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고요, 그리고 오랜 기간 KCF를 섬겨주셨던 김남근 (전) 회종님, 김수경 자매님, 그리고 귀여운 성연이까지 주님께서 축복하신 이 아름다운 가정을 위한 송별회가 있었던 날이지요. 어제 출국하셨으니 지금 블로그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는 이미 한국에 계시겠네요.
맛있는 저녁을 남근형제. 수경자매님께서 풍성하게 준비해주셨는데 아직 블로그 올리는 일이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하게 배고프니까 음식에 미혹되서 그런지 사진을 못 찍었어요. :'( 아주아주 맛있었답니다. 육체 가운데 배부르게 먹음으로, 영적으로 말씀까지 배부르게 먹을 준비를 마쳤지요.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바로 요한복음의 주인공이셨던 예수님이신데요. 하목사님께서 총 7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셨어요.
1. 나는 생명의 떡이라
2. 나는 세상의 빛이라
3.나는 양의 문이라
4.나는 선한 목자라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7. 나는 참 포도나무라
7개의 항목들을 정리해나가면서 요한복음을 다시금 쭉 훑어갈 수 있었지요. 오병이어 기적, 초막절에 해주시는 이야기들, 나사로를 살리신 모습, 죽음을 앞둔 유월절 만찬에 준비시켜주시는 것들 등등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 목사님을 말씀대로 참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보여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예수님께서 @@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으로 나타나는지, 복음 안에서 우리를 규정해보는 성찰을 시간을 가져보자는 제안으로 말씀을 마무리해주셨지요.
나는.......대체 뭘까요? ^^;
그리고 남근형제. 수경자매님 가족을 위한 송별회가 (제가 만든 ㅋㅋㅋ) 슬라이드쇼로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KCF 형제. 자매님들께서 보내주신 땃땃한 메시지와 사진을 (스피커가 없어서 음악이 잘 들리지 않은 상태로!!! ㅠㅠㅠㅠㅠㅠㅠ) 옹기종기 모여 함께 감상하였지요.
그리고 목사님께서 감사패를 전달해주시고, 모든 지체들이 함께 모여서 남근 형제. 수경자매. 성연이네 가족의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을 위한 축복 기도를 함께 해주었어요. 기도 후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스탠포드에서의 8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동안 깊이 정 들었던 형제.자매님들이 눈물의 바다를 만들어주셨다는......미국에 있으면 이별이라는 게 익숙해질법도 한데, 참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을 가지면서도 친구를 떠나보내는 순간의 아쉬운 마음과 여운은 참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앞으로 다시 만난다면 이 곳이 아닌, 한국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깔깔 웃으면서 한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맛난 야식을 함께 먹는다거나 혹은 스웨덴이나 유럽같은 멋있고 새로운 곳에서 재회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성연이네 가족 이곳을 떠나는 발걸음을 기쁨으로 응원하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용- :D
p.s: 현옥자매님의 남편이신 상혁 형제님께서도 이 날 대모임에 참석해주셨는데요. 건강이 많이 회복되셔서 정말 감사하였어요. 이제는 정말 살아서 저희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주님을 간증하는 일꾼이 되셨네요. ^^; 앞으로도 상혁형제님의 건강, 옆에서 간호해주실 현옥 언니를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2013년 7월 14일 일요일
7월 12일 전체 모임
그동안에 저희 가족은 멕시코로 은혜로운 선교를 다녀오고, 하시용 목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KCF 지체 분들께선 코스타에 참석하셨더군요. July 4th 주말을 이용해서 가족들끼리 나들이도 많이 다녀오시고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여름방학인지라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들을 보내시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중, 새로운 조편성과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된 KCF 대모임이 지난주에 있었습니다.
이성진 형제. 연민영 자매님네 조에서 준비해주신 맛난 저녁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남편이 야근을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갔는데도 저녁식사 시간은 이미 끝났더라고요. 아쉽습니다. 그리고 이 날 생월파티도 했는데, 하필 사진을 촛불 끄고 기도할 때 찍어서 축하사진답지 못하게 너무 엄숙한 모습으로 나왔어요. 아시다시피 여기 조명도 어두컴컴해서요. ㅜㅜ. 다음엔 지각도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개인적으로 파파라치 기질도 퐉퐉! 발휘해야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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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강해주시는 전 집사님 |
이번주는 요한복음 18장 28절 - 19장 16절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대제사장들에게 끌려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는 내용으로 전윤찬 집사님께서 IBS 방식으로 접근하며 설명해주셨습니다. IBS 훈련을 통해 성경을 읽으며 추측하는 부분들 그리고 성경에서 직접 확인 가능한 부분들을 파악해가면서 이 둘을 잘 분류해나가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자신이 추측, 생각하는 부분들에 있어서도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 방향(?)에 가까운지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이런 과정이 공부와 배움에 있어서 참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많은 분들께서도 공감하셨으리라 생각해요. 배우고 훈련하다 보면 내 추측의 정확도가50%에서 60%, 60%에서 70%으로 점점 향상되는 날이 오겠지요.
IBS의 중요한 강점 중에 하나가 아마도 그 시대의 Context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한의 내러티브는 그 시대 (혹은 오늘날까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율법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는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시기에 의해 희생되시고 이 희생 속에서 그분은 오히려 우리의 죄를 씻어주기 위한 화목제 되셨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즉, 당대 성경을 읽을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오해를 풀어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그들의 믿음을 올곧게 하려는 노력이 숨어있었음을 알 수 있었지요. 이러한 메시지를 현상황에 적용하여 우리들에게는 어떤 오해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 어려움을 겼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새로운 방식 도입! *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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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의 시간 |
대모임에서도 (말씀 들은 후 토의를 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앞으로 소모임도 새로운 조원들과 함께 교제와 나눔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동안 잘 몰랐던 분들과 마음을 나눌 생각하니 설레이네용- 호호호-
2013년 6월 17일 월요일
6월 14일 전체 모임: 회종 선출
그동안 현진 자매님께서 블로그를 너무나 꾸준하게 잘 관리해주셨는데, 그 뒷자리를 맡아 감당하려니 적지않은 부담감이 몰려오네요.ㅎ.제가 가끔 허당같이 굴거든, KCF 지체들께서 매의 눈으로 감시하여 제가 만든 구멍을 함께 메꿔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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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으로 수고해주신 영희자매님과 주영형제님, 그리고 진행을 맡아주셨던 은규 형제님 |
지난주 금요일에는 하시용 목사님과 함께 요한복음 (16장 16-33) 읽기를 진행했는데요. 13-17장 부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목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준비시켜주는 부분인지라, 분위기가 다소 엄숙해지기도 하고, 주시는 메시지가 강펀치처럼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13,14장/ 15, 16장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후자에서는 돌아가심 뿐만 아니라, 승천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제자들을 포함하여 교회라는 큰 공동체에 대하여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말씀을 주시지요. 저희가 초점을 맞추었던 16장은 IBS의 방법 중 하나인, 반복되는 구간 즉 강조되는 부분을 찾아 말씀을 분석해보았습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나누어보아, "조금있으면" 제자들 곁을 잠시 떠나실 주님, 하지만 "그 날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구하여,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위로, "지금에야" 깨닫는 제자들에게 교만이 아닌 다시 겸손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는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이 말씀이 결코 2000여년 전 제자들이 아닌 현재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금요일은 아주 초큼 더 특별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남근 형제님의 뒤를 이어, KCF를 섬겨주실 회장이 아니라, 회"종"님을 선출하는 날이었지요. 치열한(?) 선거 끝에 유경란 자매님께서 새로운 회종으로 선출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주신 새로운 리더쉽과 함께 나아가야할 KCF의 모습을 위해 함께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회종 한사람이 메고가는 십자가가 아니라, 종이 한장이라도 ㅎ함께 들고 갈 수 있는 다함께 돕는 공동체로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주 목요일이면 저와 창훈 형제가 멕시코로 단기선교를 떠나게 되는데 KCF 모임에서 기도후원을 든든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역시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가 큰 힘이 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잘 다녀올께요.
종종 생각나시거든 선교 기간 (6/20-26) 동안에도 기도 부탁드려요.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6월 3일 섬김이 모임
이번주 섬김이 모임은 전체 모임을 준비하는 주로 김현수 형제님의 인도로 새 책 톰 라이트의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를 가지고 첫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톰 라이트는 첫 장에서 바울의 복음을 기독교적 배경 뿐만이 아니라 헬라적 배경, 유대교적 배경까지 같이 고려해서 더 큰 관점에서 설명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복음주의 진보(?)에 있는 톰 라이트의 책을 시작하면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교회에서 성장한 저희들이 어떻게 하면 톰 라이트의 책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지, 톰 라이트는 우리가 익숙한 다른 신학자들 혹은 Christian writer들에 비해 어떤 면이 다른지 등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톰 라이트의 책을 계기로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받아들인 하나님보다 더 큰 하나님을 이해하기를 원하고 또 복음에 대해서 좀 더 크고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3년 6월 1일 토요일
품격 (하시용 목사님 칼럼)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한 꼭지의 주제가 “거지의 품격”입니다.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를 패러디한 코미디라고 들었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거지와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실랑이를 벌입니다. 넉살 좋은 거지는 순진한 아가씨의 질문을 빌미로 500원 이상을 꼬박꼬박 챙깁니다. 아가씨는 “뭐 이런 거지가 다 있어”라며 거지를 향해서 소위 돌직구를 날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지에게 마음이 끌리는 듯 합니다. 품격 있는 거지와 도도한 아가씨 사이의 은근한 로맨스도 볼거리입니다. 코미디 속의 거지는 자신을 꽃거지라고 밝히면서 꽃으로 장식된 겉옷을 입고 춤을 춥니다. 보통 거지와 다른 품격이 있는 거지임을 밝히는 동작입니다.
연암 박지원이 쓴 풍자소설가운데 <허생전>이 있습니다. 허생이라는 남산골 선비는 10년을 작정하고 학문을 시작했습니다. 7년쯤 지났을 때 집안일을 책임지던 아내가 푸념을 하기 시작합니다. 집은 다 무너져 내리고, 쌀독에 쌀은 떨어지고, 옷은 헤어지는데도 글만 읽고 있으니 아내가 부화를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길로 허생이 집을 나서서 장안의 부자인 변씨에게 일만 냥을 빌려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손을 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해서 상당한 돈을 법니다. 그렇지만 허생은 돈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변씨에게 빌린 만 냥을 갚은 후에 남산골 오두막집으로 돌아갑니다. 허생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본 변씨가 허생에게 먹거리를 대주면서 친구처럼 지내게 됩니다. 남산골 선비 허생은 부자 친구 변씨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대주면 정중히 사양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 싶으면 곧장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째서 내게 재앙을 물려주려 한단 말인가?”남산골 선비까지는 아니더라도 품격을 지키며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품격(品格)을 사전에서는 “사람의 품성과 인격” 또는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가치나 위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품격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풍겨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갖고 있고, 높은 위치에 올라갔어도 저절로 품격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성품과 인격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가치와 위엄이 있어야 품격이 살아납니다. 또한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부자 친구 변씨가 자신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의 호의를 베풀어 줄 때는 “어째서 내게 재앙을 물려주려 한단 말인가?”라고 말한 남산골 선비 허생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사회가 품격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고위 공직자가 남의 나라에 와서 추태를 벌인 것은 국가의 망신입니다. 어디 그 한 사람뿐일까요? 어쩌면 빙산의 일각처럼 사회 곳곳에서 무례하고 저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남의 말을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품격이 요청됩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병을 고쳐주시고, 배불리 먹여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한번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품격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인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온갖 조롱과 비난의 소리를 들으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하지만 메시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품격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예수님의 대리인으로 살았습니다. 거기에 성령의 능력까지 더해지니 초대 교회가 부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을 갖춘 그리스도인들인지 돌아볼 시점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품성과 신앙 인격을 갖추고 있는지, 하나님 자녀로서의 가치와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말보다 삶이 앞서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검증 받아야 합니다. 주변에 있는 이웃들로부터 “당신은 정말 그리스도인 답습니다. 당신을 보니 나도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라는 평판을 들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갖춘 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장 16절).
2013년 5월 2일 목요일
진주 (하시용 목사님 칼럼)
진주는 유사이래 귀한 보석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주는 아픔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딱딱하고 커다란 이물질이 몸 속으로 파고들면 조개는 체액을 동원해서 그것을 감싸 안습니다. 자기 안에 침입한 이물질을 밀어내지 못했을 때 마지막으로 발휘되는 조개의 생존본능이 진주라는 귀한 보석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진주는 귀한 보석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풍깁니다. 그러다 보니 진주를 소재로 삼은 문학작품이나 노래가 꽤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살리너스 태생이면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존 스타인벡의 <진주>라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는 키노와 주애너라는 가난한 부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멕시코 만의 작은 마을에서 조개잡이를 하면서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전갈에 쏘입니다. 온몸이 퉁퉁 붓고 고열에 시달리는 아기를 둘러업고 의사를 찾아가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키노와 주애너는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진주조개잡이를 떠납니다. 아내 주애너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이라도 된 듯이 바로 그날 갈매기알 만한 진주를 발견합니다. 횡재를 한 것입니다. 이제는 의사가 집에 찾아와서 아기를 고쳐줄 것입니다. 진주를 팔면 돈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결혼식을 올릴 참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학교에 보내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게 되었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착하고 순진한 부부를 세상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를 따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집에 도둑이 듭니다. 집을 통째로 불태워버리기도 합니다. 남편 키노는 온 몸이 피범벅이 되면서 진주를 지켜냅니다. 진주를 팔기 위해서 중개상들을 찾아 가지만 헐값에 구입하기로 단합이 끝난 뒤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 키노의 성격이 점점 포학해집니다. 눈에 살기가 돕니다. 진주를 지키기 위해서 총도 준비합니다. 가족들을 위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예전의 행복은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집안에 가득합니다. 아내 주애너가 차라리 진주를 다시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진주에 마음을 빼앗긴 남편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도시로 가서 진주를 팔 작정을 하고 밤중에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진주를 노리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습니다. 남편 키노가 이들과 마지막으로 격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적들이 쏜 총에 그만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남편이 제정신이 듭니다. 가족을 위해서 진주에 집착했건만 그것은 아들을 잃는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죽은 아들을 메고 고향마을로 돌아온 키노와 주애너는 바닷가로 가서 진주를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작가 스타인벡은 그 대목에서 진주를 놓고 “흉측했고 어두침침했으며 악성 종양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행운을 가져올 줄 알았던 진주, 팔자를 고쳐주길 바랬던 진주, 아니 진주를 팔아서 아들에게는 공부를 시키고 뭔가 근사한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었던 젊은 부부의 꿈은 이렇게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작가 스타인벡이 자신의 작품을 우화(偶話)라고 불렀듯이 그의 소설 속에서 인생의 단면을 발견합니다. 우리들도 진주를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삶을 역전시켜주고,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멋지게 복수할 수 있는 진주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서 진주를 찾아 동분서주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놓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주를 찾고 보면 자신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진주를 지키려다가 자신도 망가지고 아들까지 잃어버린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우리들도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생길 중간 중간에 잠시 멈춰서 자신이 현재 추구하는 것, 애지중지하면서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점검해야 합니다.
손에 진주를 들고 있어도 그것이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얼른 바닷가에 던져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라도 자신의 초심을 무너뜨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주 자체에 관심을 쏟으며 살다 보면 구약성경 전도서 기자가 이미 간파했듯이 허무한 인생이 되기 십상입니다. 진주보다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의 아픔을 본받기 원합니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고난을 끝까지 견뎌내면서 값지고 고귀한 진주를 내면 깊은 곳에서 빚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4월 29일 섬김이 모임
4월 29일 섬김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이번주는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15장 새로운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이성진 형제님께서 생명공학 기술과 문제들을 요약해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생명공학 기술을 어디까지 이용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부분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나와있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모호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분명히 세워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과연 그것들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기쁜 것들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원리를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갑자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사후의 세계를 인간이 침범하게 되면서 결국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것을 돌려놓으시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요. 저희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과 금하신 것을 알고자 노력하고 세상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소그룹으로 모여서 저번주에 배운 적용을 실습하고 지금까지 8주에 거쳐서 배운 귀납적 성경공부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각자 소그룹에서 귀한 나눔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4월 26일 전체 모임
4월 26일 전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이번 전체 모임은 귀납적 성경공부 마지막 시간으로 하시용 목사님께서 관찰-해석-적용 중의 마지막 단계인 적용에 대해 강의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적용은 귀납적 성경공부의 꽃이고 결국엔 우리 삶에 적용을 하기 위해서 귀납적 성경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관찰과 해석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 나머지 적용 단계에 와서 지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저희들을 가르치고 저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용의 원칙에 대해서 SPECK과 4P's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SPECK (Sins, Promises, Examples, Commands, Knowledge)을 중심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또 적용할 때 4P's (Personal, Practical, Possible, Progressive)의 원칙을 따라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원리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깊은 묵상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저희들이 하나님 말씀을 소리 내어서 읽고 정독하고 묵상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소그룹으로 만나서 관찰-해석-적용 단계 중 적용을 실습하고 지금까지 배운 귀납적 성경공부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깊은 나눔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