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2일 월요일

성경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

지난 금요일 전체모임에서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할 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제가 코스타 follow-up을 위해서 준비했던 귀납적 성경연구 핸드북에 썼던 글을 이곳에 옮겨놓습니다. 제 견해와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텐데 저는 KCF가 이 정도의 견해에 동의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길지만 쭉-- 읽어보시길!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기계적 영감설(mechanical inspiration)”입니다. 성경의 글자 하나 하나를 하나님께서 받아쓰기하듯이 기록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인격이나 지력은 반영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이용하셔서 기계적으로 기록하셨다는 일종의 믿음입니다.

기계적 영감설과 비슷한 것으로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성경의 글자마다 하나님의 영감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조심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글개역성경과 표준새번역은 글자와 내용이 틀립니다. 어떤 성경이 축자영감일까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기 전에, 어떤 성경이 축자영감으로 기록된 것인지 찾아 헤매고 연구하느라 시간도 허비하고 각각의 의견이 달라서 성경을 놓고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현재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만이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입니다. 자칫 성경을 우상처럼 섬기는 Bibliolatry 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주는 안내서(signifier)이지, 성경 자체가 숭배를 받을 대상은 아닙니다. 반면에 복음주의에서도 축자영감을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성경이 인간의 언어가 아닌 하나님의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성경이 기록된 언어 자체에 하나님의 숨결 즉 성령의 영감이 깃들어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외에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이 있었지만 기록할 당시는 그들의 언어로 자유롭게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conceptual/dynamic inspiration, 어떤 언어는 영감으로 기록된 반면에 문화의 옷을 입은 언어들은 인간의 글이라고 보는 partial inspiration등이 있지만 두 의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온전히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성령의 영감을 놓고 포괄적인 영감(organic inspiration)을 수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습니다(딤후3:16). 하지만 글자마다 받아쓰기 하듯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1:21)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건전한 신앙입니다. 물론 성경에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것은 인간의 말이라는 구분도 하지 않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 전체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20:31절에 성경(좁게는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이 나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성경은 생명을 얻게 하는 구원의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119:105절에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인도하는 나침반입니다. 성경 속에는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모든 증언과 선포를 고려하였을 때, 성경 속에는 구원구원 그 이후의 삶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필요하고 충분한 모든 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이 무오(inerrancy)한 것이지, 성경 자체의 글자 글자가 무오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종종 실수가 나옵니다. 서기관들이 옮겨 적으면서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행한 실수들입니다. 번역자의 실수와 오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그런 실수가 성경의 메시지나 무오함에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또한 당시 문화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액면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내용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여자들에 대한 바울서신의 교훈, 구약성경의 일부다처제 등등 수없이 많지요! 여기서 해석의 중요성이 나오고 성경을 연구할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네 가지 gaps을 언급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의 이런 실수 또는 세상적인 면(문화적인 것들)을 두고 Manfred T. Brauch이라는 분은 Abusing Scripture (IVP, 2009)라는 책에서 Intention incarnation으로 설명합니다. Intention은 성경이 생명을 주고 개인은 물론 온 우주의 구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있어서 어떤 오류도 없이 완벽하다는 것입니다.[아멘]


Incarnation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듯이, 성경 속에는 저자는 물론 그들이 살던 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친근하게 이해하듯이, 성경의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들을 보면서 성경이 진공 속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체험적인 사건들에 근거해서 기록된 말씀임을 깨닫고 더욱 공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신비로운 하늘의 언어로 기록되지 않고 특정 민족, 특정 시대의 언어로 기록된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도록 배려하신 성육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실제 역사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이지요.[아멘2] 좋은 insight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John Stott목사님과 함께 일하셨던 Christopher Wright이라는 분은 The God I don’t understand: reflection on tough questions of faith (Zondervan, 2008)에서 성경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honesty clarity를 언급하십니다. Honesty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내용이나 말씀이 성경에 들어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악(evil)또는 선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것들입니다. 구약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모조리 죽인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이 쉽지 않지요. 이런 것들은 실제로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성경의 핵심메시지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아니지만 꽤 힘든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나중에 천국에 가서 물어봐야지하고…) honesty입니다. 반면에 clarity는 성경을 대충 읽고 넘어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성경 말씀을 명확하게 해석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귀납법적 성경연구에 한 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성경에 권위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성경책 자체에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각자가 성경을 내밀면서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면서 싸움을 하는 웃지 못할 광경을 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영감을 불어넣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생명을 주시려는)과 구속의 마음을 표현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활동을 과거-현재-미래의 시간대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구요.

이렇게 온 우주만물, 세상,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속에 간섭하시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셨다는 사실에서 성경의 권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자는 제안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천국에 가면 성경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댓글 1개:

  1. 성경의 무오함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았던 것이 해결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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