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근심 상자 (하시용 목사님 종교 칼럼)

하시용 목사님께서 2012년 12월 28일 SF한국일보에 올리신 종교 칼럼입니다. 이제 2012년도 하루 남짓 남았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는 주님과 더 깊이 동행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평안과 감사가 가득한 한 해를 맞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근심 상자
독일의 문호 괴테는 38년에 걸쳐서 파우스트를 집필했습니다. 21세에 시작해서 59세에 끝을 맺었으니 그의 인생 전체를 한 작품에 바친 셈입니다. 젊었을 때 집필한 부분은 자신감과 열정이 넘칩니다. 반면에 노년으로 갈 수록 인생을 관조하는 대작가의 신중함이 발견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한 밤중에 잿빛을 한 여인 네 명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여인은 결핍이고, 둘째는 죄악, 셋째는 근심 그리고 마지막 여인은 가난입니다. 네 여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닫혀있습니다. 그 집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파우스트가 사는 집입니다. 가난은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죄악도 일찌감치 집안으로 들어가길 포기합니다. 결핍은 혹시 주인이 가난해 지면 그때 들어가겠다고 말하면서 그림자처럼 홀연히 사라집니다. 네 명의 여인가운데 남은 사람은 근심뿐입니다. 근심이 친구들에게 말한 대목이 눈에 보이듯이 실감나게 읽혀집니다.:”당신네들은 들어갈 수도, 발을 들여놓지도 않는군요. 나 근심은 열쇠 구멍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열쇠구멍을 통해서 집안으로 들어간 근심이 그 집의 주인인 파우스트에게 말을 겁니다. 파우스트는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근심은 집요하게 파우스트에게 엉겨 붙습니다. 물러가라는 파우스트의 명령에 자신은 와야 할 곳에 왔을 뿐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급기야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제 목소리는 귀에는 안 들려도 가슴 속엔 틀림없이 울릴 거예요. 저는 모습을 바꾸어가며 무서운 힘을 휘두릅니다. 육로에서건 바다에서건 영원히 불안을 자아내는 길동무로서 요청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나타납니다.” 어쩌면 이렇게 근심을 잘 표현해 놓았는지요!


근심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은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 함”입니다. 일이 해결되면 근심도 사라집니다. 젊었을 때는 해결되지 않았어도 패기와 자신감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음을 느낍니다. 그때마다 우리들 마음의 열쇠구멍을 통해서 근심이 들어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무서운 힘을 휘두릅니다. 불안을 자아냅니다. 결코 길동무를 삼고 싶지 않은데도 불쑥불쑥 나타나서 앞길을 막아섭니다. 다루기가 참 까다롭습니다.


2012년 한 해가 아쉬움과 감사가 교차하는 가운데 저물어갑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마지막 한 달을 열심히 살았지만 인간만사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디 하나를 딱 잘라서 정리할 수 없고 미완(未完)의 상태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일이야 마무리가 되지 않았어도 희망차게 새해로 이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길을 가로막는 어려움들은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곧 열쇠 구멍 사이로 들어온 근심거리가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근심 상자를 하나씩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 해가 가기 전에 마음 속에 있는 근심거리, 해결되지 않아서 속을 태우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근심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상자가 꽤 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근심걱정을 달고 살기 때문입니다. 근심 상자의 뚜껑을 꼭 닫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무척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근심상자를 얼른 받으실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똑 같은 삶을 사셨기에 우리들이 겪는 염려와 근심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남겨두신 제자들을 향해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쇠구멍으로 들어올 만큼 교활하고 변화무쌍한 근심이라도 예수님 앞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꼭 붙잡는 믿음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근심 상자를 예수님께 넘겨드리고 힘차게 새해를 맞이합시다. (2012년 12월 28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12월 21일 전체모임: 찬양대회


12월 21일 전체모임은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아 University Church에서 찬양대회 모임으로 모였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빗속을 뚫고 Santa Clara까지 운전해서 저녁을 배달해오신 김남근 회종님 덕택에 같이 맛있는 저녁을 나누고 교제하고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소그룹 별로 모여서 잠시동안 연습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시용 목사님께서 떡집이란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설교해 주시면서 저희 모임이 베들레헴 같이 작은 모임일지라도 에브라다처럼 열매를 맺는 모임이 되기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뒤로 이어서 소그룹들의 찬양 장기자랑(?)이 이어졌는데요. 소그룹별로 개성과 형편에 맞게 열심히 준비해오신 모습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재미있었습니다. 


소그룹들의 장기자랑 중간에 우리 어린이들의 찬양과 율동, 그리고 섬김이들의 찬양도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들끼리 같이 즐기고 기뻐하는 소중한 축제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끝으로 한국과 미국 곳곳에서 KCF를 사모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성탄 메세지가 있었는데요. 그 분들과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그리움과 감사함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일일이 연락하시고 동영상으로 묶어주신 김남근 회종님께 감사드립니다.

 소그룹 별로 열심히 준비하신 찬양과 율동으로 같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쁜 추억을 만들면서 하나 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와주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자리를 빛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모두들 너무 잘하셔서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제 2012년이 4일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가운데 소망과 평안이 가득한 연말연시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샬롬!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12월 17일 섬김이 모임



2012년의 마지막 공식 섬김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6장 개발과 원조의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개발과 원조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인가, 어떻게 개발과 원조의 방향으로 국가들을 이끌 것인가, 또 우리 각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등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가치가 다수의 가치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환영 받지 못하는 사회를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 대선을 앞두고 모임을 가지다 보니 아무래도 대선에 맞추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고 어그러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로 관통하는 원리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눈 앞에서 삐뚤어진 것들을 많이 보고 있음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영향력을 미쳐야 할지 난감한 상황 등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KCF에 그리고 KCF 섬김이분들에게 요즈음 기도가 필요한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 속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해서 나아가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하고 그리스도 공동체로서 서로의 아픔을 위해 같이 기도하고 같이 아픔을 나누는 저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12월 10일 섬김이 모임

12얼 10일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주는 소그룹 성경공부를 준비하는 모임으로 요한복음 13:1-20을 놓고 각자 공부한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문 내용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보면 익숙한 주제들입니다. 하지만 각자 성경공부를 하는 가운데 목욕하는 것, 발을 씻는 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 계속 등장하는 가롯 유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의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겨서 많은 나눔이 있었습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삶을 나누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어제는 밤 늦게까지 - 11시 37분에 끝났어요. - 서로의 삶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의 삶 가운데 말 못할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서로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어깨를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80% 부족하게 해가는 숙제 때문에 부담감이 있어도 그 모임을 항상 사모하면서 가게 되는 것은 그 모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위로 받고 또 성장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 모임 궁금하시죠? 궁금하면 500원~ ㅎㅎㅎ 섬김이 모임은 열려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이번주 소그룹 풍성한 나눔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12월 7일 전체모임

 University Church에서 12월 7일 전체모임을 가졌습니다. 고동성 형제님, 박창희 자매님의 조에서 준비해주신 다양한 짜장밥과 해물카레밥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교제하고 이현옥 자매님의 인도로 찬양을 나누었습니다. 주위에 위로가 필요한 분들이 많아서 차분한 노래들을 부르면서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했습니다.
 이어서 하시용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2:37-50으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으로 해서 큰 단락이 마무리가 됩니다. 그 마무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외침으로 끝났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헬라인까지 예수님을 찾아오지만 정작 유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더 대적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것은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나를 믿고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빛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까지 보여주셨던 대표적인 7가지 표적들, 하지만 그 표적들을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이야기하면서 이사야 53:1을 인용하였는데요. 예언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과거 확증 예언, 즉 요한이 이유를 생각하다가 이사야 구절을 찾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2월 생월파티도 같이 하였습니다. 10분이나 되시는 분들이 생일을 맞으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둔하고 완고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좋은 땅이 되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받고 빛 안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다들 바쁘시고 어려우신 가운데에도 말씀을 사모하시는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오셔서 같이 섬기시고 교제하는 모습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공동체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같이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2년 12월 5일 수요일

12월 3일 섬김이 모임

 12월의 첫번째 섬김이 모임이 University Church에서 열렸습니다. 이번주는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책 5장 '창조 세계를 돌봄'을 가지고 같이 환경문제와 동물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환경문제와 동물문제를 주로 나누었지만 이 문제들에서 시작해서 지구의 자원들 뿐만이 아니라 저희들의 자원들 역시 어떻게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들 각자가 저희들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쓰는 것이 성경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것인지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고 결정을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섬김이 모임은 요즈음 여러 가지의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그리스도인의 지성을 가지고 성경에 바탕한 올바르고 건강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고 있는데요. 저의 얕음을 깨닫고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숙제를 얻어가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성경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결정을 뒷받침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세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전체 모임으로 모입니다. 하시용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2:37-50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2장으로 해서 또 요한복음의 한 막이 끝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는 가운데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 왔다고 계속 선포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장부터 12장까지 읽어보고 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금요일날 뵙겠습니다. 샬롬!

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추수 감사절기에

하시용 목사님께서 11월 22일 SF한국일보에 올리신 글입니다. (클릭)

추수 감사절기에

추수감사절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추수감사라는 용어는 농경사회에 적합해 보입니다. 우리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추수감사라는 말보다 댕스기빙(thanksgiving)이라는 영어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과 주변의 친지들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는 가을에 포도농사를 마친 후에 조상들이 광야에서 천막을 짓고 살던 것을 되새겨 보려는 초막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1월 네 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전통은 1620년 11월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그리고 66일간의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생소한 곳에서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부의 혹독한 겨울을 지내면서 절반 가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앙의 자유와 신대륙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보려는 부푼 꿈을 갖고 왔지만 밀어닥친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때 이들을 도와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인디언 원주민들이었습니다. 옥수수를 심는 법부터,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 법, 산에 자라는 독초들을 구분하는 법까지 원주민들로부터 실제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청교도들은 그 해 가을 첫 번째 수확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원주민들을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원주민들이 청교도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초월해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원주민들과 함께 감사의 축제를 즐긴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전통에는 이처럼 자신의 종교와 생각을 넘어서 도움을 주고 받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함께 어울려 즐기는 속 깊은 감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키던 청교도들의 마음이 한없이 기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같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동료들 가운데 절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대륙에 와서 첫 번째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청교도들의 마음 한 켠에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아쉽고 허전한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갖는 미안함입니다. 곧이어 닥치게 될 겨울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겨울을 나면서 동료들을 더 잃게 되면 큰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든 아쉬움과 허전함 그리고 불안함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역시 속 깊은 감사입니다.

감사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유카리스테오”입니다. “행복하다” 또는 “기쁘다”는 뜻을 갖고 있는 접두어 “유”와 “은혜”라는 의미의 “카리스”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받은 은혜를 기쁨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첫 번째요 그 다음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은혜에 신앙을 초월해서 기쁨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냈던 청교도들이 아쉬움과 불안함 가운데 감사예배를 드렸듯이 우리네 삶 속에도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쁜 일보다 속상한 일이 훨씬 많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생각처럼 세상일이 펼쳐지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우울한 마음에 휩싸여서 감사보다 불평과 원망이 앞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 깊은 감사는 마음의 상처, 실패, 슬픔과 아쉬움까지 감사로 변환시키는 능력입니다.

요즘은 추수감사절보다 블랙 금요일 쇼핑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감사는 주는 것인데 많은 것을 값싸게 취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침 일찍 줄을 서며 쇼핑을 즐기는 분주한 발길들을 보면서 추수감사절의 본뜻이 많이 퇴색되었음을 느낍니다. 

추수감사절 주간을 마무리하면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임했던 감사를 다시금 헤아려보기 원합니다. 스쳐 지나가면 잊혀질 일들도 잠시 멈춰 서서 그 안에 깃든 은혜를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그때 속 깊은 곳에서 감사가 우러나올 것입니다. 마음 속에 은은한 기쁨이 샘솟고 소망의 빛이 밝혀질 것입니다. 우리 삶 전체가 환해 지는 행복한 순간입니다. 해피 댕스기빙!

11월 26일 섬김이 모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University Church에서 11월의 마지막 섬김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 모임은 소그룹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요한복음 12:12-36을 가지고 각자 귀납적 성경공부한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본문은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또 헬라인들까지도 예수님을 찾아오는 등 예수님을 이제 많은 유대인들이 알게 되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하지만 대조적으로 그들이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원자 예수님으로 오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메시야로 이해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믿지 않고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저희들 역시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저희들의 틀에 맞추어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저희들의 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저희들의 틀을 벗어나 예수님 계신 자리로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그룹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소그룹에서 열린 마음으로 깊은 나눔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11월 12일 섬김이 모임

11월 12일 월요일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주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현대 사회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4장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김현수 형제님의 인도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워낙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에 이것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 접니다. -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기독교적인 관점도 정립해 가고 또 생각해야 할 숙제들도 집으로 많이 가져간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성경적인지는 알지만 악한 세상에서, 국가와 국가의 문제 속에서, 또 실질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서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생각도 했고 또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불가피하게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일하면서 살아가는데 국가의 권리, 나의 권리 등 기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도 다시 성경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전체모임으로 모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함께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향유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내가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세상의 빛이 되어서 오신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빛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억하시는 것처럼 요한복음 12장까지를 한 부분으로 볼 수 있고 13장부터는 이야기가 많이 바뀝니다. 요한복음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장이네요. 오셔서 많은 은혜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11월 4일 일요일

11월 3일 이현옥 자매님 bridal shower

 11월 3일 토요일 GCC Nairobi Room에서 이현옥 자매님의 bridal shower가 열렸습니다. 기존의 bridal shower와 다르게 모든 가족들이 함께 하는 자리로 꾸몄습니다. 이현옥 자매님의 약혼자이신 안상혁 형제님도 함께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현옥 자매님은 KCF의 처음부터 함께 하셨고 섬김이로 또 싱글조의 조장으로 오랫동안 섬겨주셨습니다. 이현옥 자매님의 오랜 기도를 응답해주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potluck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점심을 먹고 이현옥 자매님과 안상혁 형제님의 연애 스토리를 들으면서 오글/행복/뭉클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었는데요. 두 분을 통해 펼쳐질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에 감사하고 기대하면서 두 분의 앞길을 축복하는 기도로 함께 해주실 줄 믿습니다. 식사 준비, 장식, 정리, 진행 등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결혼식이 서울에서 11월 24일날 열립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샬롬!

11월 2일 금요일 전체 모임

11월 2일 금요일에는 University Church에서 전체 모임으로 모였습니다. 저번주는 소그룹으로 모였기 때문에 두 주 만에 만나서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오세관 형제님, 한수진 자매님 소그룹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카레라이스와 단무지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집에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을 때  KCF에서 먹는 것만큼의 맛이 나오지 않는 것은 실력 탓도 있지만 교제 가운데에서 먹는 것이 몇 배 더 맛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하시용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1:17-37을 가지고 마르다, 마리아, 유대인들과 대화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과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마리아와 유대인들 앞에서 그들과 같이 공감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내용, 그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에 묶여서 슬퍼하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려는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지만 동시에 그들과 공감하시고 그들과 같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KCF와 교제하는 가운데 예수님과 같은 공감을 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생명되신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저희들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참 안식 누리세요. 샬롬!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하시용 목사님 칼럼: 기도 품앗이

하시용 목사님께서 10월 25일 SF 한국일보에 올리신 종교칼럼입니다. (클릭

기도 품앗이

작년 시카고에서 열린 청년 집회에 참석했다가 몇몇 청년들과 요즘 대세인 페이스북(facebook)으로 서로 소통하기로 약속했습니다그때부터 젊은이들 용어를 빌리면 페이스북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 지경이 생각보다 넓습니다어떻게 알았는지 잊었던 친구들을 마구 찾아 줍니다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10년 만에 찾은 친구가 있습니다동부에 있을 때 성당에 다니는 오누이와 함께 매주 월요일 성경읽기 모임을 했습니다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성실한 청년들이었습니다오빠는 뉴욕으로 직장을 다녔고 동생은 의대를 준비 중이었는데 월요일이 되면 꼬박꼬박 제가 다니던 신학교 기도실로 찾아와서 성경을 읽고 서로 느낀 점과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을 한 시간여 가졌습니다인디애나로 옮기면서 이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어떻게 살고 있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페이스북이 이들을 찾아 주었습니다동생은 맨하튼에서 의사로 일하고오빠는 연방은행의 높은 자리에 올라서 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세 식구가 모이면 제 얘기를 자주 했었고 어디 있든지 좋은 목사가 되길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서로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기도 가운데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얼마나 감사하던지요
페이스 북은 개인의 속사정이 모두 드러나는 단점이 있습니다하지만 지혜롭게 조절하면 서로의 마음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리는 글을 보면서 좋아요라고 공감할 수 있고 격려의 글을 달아줄 수도 있습니다어떤 친구들은 기도제목을 올려놓습니다그러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수십 년 만에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울 보듯이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줍니다그러고 보니 어떻게 대하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날 뿐 세상의 모든 일들이 유익합니다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이 매사에 진리임을 또 한번 깨답습니다.
우리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합니다그 만큼 연약하고 쉽게 부숴지는 질그릇들입니다서로 지켜주고 세워주고 북돋아 주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은 기도로 돕는 것입니다기도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비록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온라인상에서 서로 연락하고 대화할 수 있듯이하나님과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수 없지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마음 속으로 들어갑니다시편기자의 고백대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귓전에 울려 퍼집니다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해 주심을 믿습니다.
기도 가운데 가장 귀한 기도는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성경에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금향로로 비유했습니다이웃을 위한 기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예전에 만났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앞으로 만나게 될 신앙의 동역자를 놓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피붙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저 멀리 지구 끝에 있는 이름 모를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기도가 곧바로 응답되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지만 이웃을 위한 기도는 금방 열매를 볼 수 없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이처럼 이웃을 위한 기도는 사랑과 소망으로 심는 기도의 씨앗들입니다.
세상에 눈물겹게 감사한 말이 있습니다.:“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그 어떤 입에 바른 칭찬이나 격려보다 뒤에서 묵묵히 기도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오늘 우리가 이렇게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부모님들의 기도가족들의 기도교회 식구들의 기도잊혀진 줄 알았는데 기도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던 친지들의 기도가 오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이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기도의 품앗이에 참여하기 원합니다기도 가운데 서로 연결된 세상은 참 아름다운 하늘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10월 29일 섬김이 모임

 벌써 10월의 마지막 주네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0월 29일 섬김이 모임을 University Church에서 가졌습니다. 이번주는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3장을 읽고 같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오은규 형제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3장의 내용은 '다원적 세계: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영향력이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파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세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저희 KCF의 모임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섬김이로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희들이 피부로 체험하는 문제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KCF 공동체 내에서 고민하는 문제이었기 때문에 활발하고 풍부한 나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KCF가 항상 치우치지 않고 본질을 잡고 해야 하는 일들을 충성되게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주 금요일은 전체모임으로 모입니다. 하시용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1:17-37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저번주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내용입니다. 꼭 읽어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변화받는 부푼 마음으로 금요일에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추신: 이스라엘 역사 찾아보는 숙제는 하셨나요?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10월 26일 소그룹 모임

10월 26일 싱글조 소그룹 모임 사진입니다. 저희 싱글조는 Old Union에서 모였습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서로의 안부도 묻고 기도제목도 나누면서 요한복음 11:1-16을 공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틀을 지체하시고, 이틀 뒤에 위험을 무릅쓰고 베다니로 돌아가시는 예수님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제자들의 내용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지체에 대해서 그리고 더 나아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긴 시간 동안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유찬 집사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더욱 풍성하고 알찬 모임이 되었습니다. 커플조 소그룹도 풍성하고 은혜로운 모임 가지셨을 줄로 믿습니다. 다음주는 전체모임으로 모입니다. 한 주동안 말씀 붙잡고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10월 22일 섬김이 모임

10월 22일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주는 소그룹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요한복음 11:1-16을 가지고 귀납적 성경공부한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요한복음 11:1-16은 예수님께서 보이신 마지막 표적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내용의 도입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가족,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이틀을 지체하신 예수님, 유대인들의 대적 가운데에서도 위험한 길을 가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제자들 등의 내용을 가지고 귀중한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지체가 있을 때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르다를 비롯한 예수님 제자들의 믿음은 병자를 살리실 것 정도의 믿음이었고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라는 것 정도의 믿음은 아니었는데 우리의 믿음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하지는 않는지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소그룹에서 귀한 나눔의 시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10월 19일 전체모임

10월 19일 금요일에는 University Church에서 전체모임을 가졌습니다. 싱글조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비빔밥을 같이 나누고 찬양을 드리고 하시용 목사님을 통해서 요한복음 10:22-42 말씀을 배웠습니다. 수전절, 겨울, 솔로몬 행각의 배경 속에서 유대인들에게 배척 당하시는 예수님과 대조적으로 요단강 저편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성전을 회복/봉헌하는 의미의 수전절의 배경이 예수님께서 진정한 성전으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신 것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성전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과 맞물려서 연결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에워싸고 배척하는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셨지만 37-38절에서는 유대인들을 마음에 품고 그들에게 자신이 한 일을 보고 믿으라고 애원하셨습니다. 38절에서 믿으라 그러면 ... 깨달아 알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저희들이 앎을 내려놓고 먼저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그리하여 진정한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저희들을 먼저 부르셨고 따르는 저희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저희들을 안전하게 지키시는 것을 믿고 순종으로 담대하고 올곧게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님께서 부탁하셨듯이 시간나실 때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공부하시다가 좋은 자료 찾으시면 같이 나누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주는 소그룹으로 모입니다. 요한복음 11:1-16을 공부합니다. 요한복음에서 기록한 예수님의 마지막 표적, 나사로를 살리시는 내용입니다. 벌써 요한복음 반 정도를 공부했네요. 처음 요한복음을 공부하기로 결정했을 때 1년 정도 계획을 가지고 시작해서 중간에 지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저자가 의도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기술해서 그런지 성경공부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는 이 시간을 통해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고 따르는 순한 양같은 저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소그룹에서 풍성한 나눔하세요. 샬롬.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10월 15일 섬김이 모임

 10월 15일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주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2장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기독교적 지성을 가지고 현대 사회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하나님, 예수님, 인간, 구원/하나님 나라, 교회에 대해서 바르게, 더 완전하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세우고 자신에 대한 모든 기초에 의문을 성가시게 제기하면서까지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일지를 치열하게 연구하고 의식적으로 고민하는 기독교적 지성을 훈련하고 하나님의 시야로 창조-타락-구속-완성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이고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주제인지라 풍성한 나눔이 있었습니다.사소하게 지나칠 문제들에서부터 복잡한 사회 문제까지 문제를 정확히 알고 기독교적 지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리스도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고민과 훈련을 통해서 얻어짐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같이 고민하면서 선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인줄로 믿습니다.10월 19일 금요일은 전체 모임으로 모입니다. 하시용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0:22-42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그리고 싱글조에서 비빔밥을 준비합니다. 많이 참석해 주세요. 샬롬!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10월 5일 신입생 환영회





10월 5일 University Church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습니다. 지송원 형제님, 권영대 형제님, 진윤경 자매님, 편하련 자매님께서 새롭게 참석해 주셨습니다. 환영합니다. 맛있는 저녁을 함께 나누면서 새로 오신 분들과 함께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하시용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9장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못 본 자를 보시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위한 것이라고 소망을 주시고 친히 고쳐주시고 다시 만나주시는 과정을 통해 그 맹인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180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도 맹인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맹인이 그랬듯이 그 체험을 KCF와 삶 가운데에서 담대하게 간증하고 같이 나누고 격려하는 모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신입생 환영회 시간동안 활동적인 아이들을 돌보시느라 고생하신 고동성 형제님, 김남근 형제님, 오세관 형제님, 박효근 형제님, 오은규 형제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연민영 자매님의 출산 예정일이 다음주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샬롬! 




2012년 10월 2일 화요일

10월 1일 섬김이 모임

10월 한 달의 시작을 섬김이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진에 목사님께서 안 나오셨네요. 죄송합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신 오은규 형제님과 GRE 시험 준비로 잠시 자리를 비우셨던 고동성 형제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화기애애하고 활기찬 모임이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1장 그리스도인의 사회, 정치 참여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복음과 사회 참여가 같이 나아가야 하는데 동의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던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볼 시간을 가져서 좋았고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던 정치 참여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로 배우고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밖에 이번주 금요일로 다가온 신입생 환영회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남근 회종님께서 서가영 자매님께서 수고해주신 포스터와 김현수 형제님께서 수고해주신 책갈피를 제작해 오셨어요.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입생 환영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오늘 참석하지 못하신 한국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신 김현수 형제님, 학회 참석 중이신 유경란 자매님, 직장 생활과 육아 문제 등으로 정신없는 생활을 보내고 계실 박현민 형제님 가정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10월 5일 신입생 환영회 공지


하나님 나라

하시용 목사님께서 SF 한국일보 9월 28일자 신문에 올리신 종교 칼럼입니다. 인터넷에는 안 올라와서 링크를 못 걸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내 영혼이 은총 입어”(495)는 제가 즐겨 부르는 찬양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합니다. 주의 얼굴을 뵙기 전에는 하늘나라가 참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가 마음 속에 이뤄졌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든지 거친 들을 걸어가든지 초막이나 궁궐에 살든지 예수님을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변화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은 기독교인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지만 막상 정의를 내리거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궁색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릇된 설명도 종종 발견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내세(來世)라고 단정짓거나, 천국을 저 하늘 어딘 가에 있을 좋은 곳 즉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젊은이들과 하늘나라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데 한 청년이 천국의 인구과밀을 걱정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 오해한 나머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천국 또는 하늘 나라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우선 용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천국은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려 하지 않았던 유대교의 전통을 고려해서 주로 사용한 용어입니다. 마태복음 외에 다른 성경말씀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더 많이 쓰입니다. 예전에는 천당(天堂)”이라는 말도 사용했는데 이것은 기복주의가 가미된 정제불명의 한국식 번역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곳은 찬송가 그대로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20-21). 우리의 마음, , 학업, 직장, 가정, 인간관계 등등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개와 누룩 서 말에 비유하셨습니다 (13:18-21). 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지만 그것이 자라면 새들이 깃드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누룩은 떡 반죽을 부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뿌려집니다. 신앙 성장은 그 씨앗이 점점 자라서 열매도 맺고 다른 이들의 쉼터를 제공하는 과정(process)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갑자기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을 마음 속에 주님으로 모신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 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심겨진 곳에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14;17)는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뿐만 아니라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 중에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믿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비밀” (8:1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고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권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 속에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해야겠습니다. (2012 9 28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9월 28일 싱글조 소그룹 모임

오늘 싱글조 모임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최기현 자매님을 같이 축복하고 교제하는 모임으로 타이 레스토랑에서 모였습니다. 최기현 자매님은 한국에 가시자마자 출근을 하셔야 해서 아주 피곤하실 것 같아요. 특히나 감기까지 걸리셔서 지금 목소리도 거의 안 나오세요. 빨리 감기 나으시고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 건강하고 즐겁게 하시도록, 그리고 좋은 신앙 공동체를 만나서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실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새 신랑 백창훈 형제님께서 어린 신부님 편하련 자매님과 함께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어요. 하와이에서 사오신 초콜렛도 정말 감사합니다. 편하련 자매님께서 이 곳 생활에 적응하시고 또 학업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가장 좋은 길을 찾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모임이기에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쿨하신 최기현 자매님께서 너무나도 재미있게 모임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최기현 자매님께서 소그룹 성경공부 때 가장 먼저 오셔서 진지하게 좋은 질문들로 저희들의 모임을 풍성하게 해주셨던 것 그리울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기뻐하시고 자매님의 길을 앞서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시는 최기현 자매님과 백창훈 형제님, 편하련 자매님 가정 위해서 기도로 함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샬롬!

2012년 9월 25일 화요일

9월 24일 섬김이 모임

9월 24일 월요일 저녁 8시에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주는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요한복음 9:1-23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고쳐주시고, 그 사람이 눈 뜬 것을 본 주위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23절에서 끊기가 애매해서 9장 전체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그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눈 뜬 사람을 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9장 한 장을 가지고도 많은 나눔과 깨달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그 진리의 깊고 넓고 높음에 감사합니다. 특별히 김남근 회종님께서 저희들이 다음주부터 읽게 되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배분해 주셨습니다. 회종님께서 또 선물로 회종님의 친구 N. T. Wright의 책을 사주셨습니다. 회종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읽어요.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 포스터를 제작해주신 서가영 자매님, 음료수를 준비해주신 이현옥 자매님, 오늘 모임을 화기애애하게 이끌어주신 고동성 형제님, 저희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전유찬 집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아프셔서 참석을 못하셨는데 같이 목사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샬롬!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9월 21일 전체모임

 9월 21일 금요일 저녁 7시 University Church에서 전체모임이 열렸습니다. 하시용 목사님께서는 참빛교회 청년부 수련회에 참석하시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하셨고 전유찬 집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31-59를 중심으로 7-8장을 요약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개관해 주시면서 저희들이 요한복음을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사정이 있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도 많으셨지만 먼 곳에서 저희 모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석해주신 최운이 형제님, 성하염 자매님, 그리고 너무나도 얌전했던 최나연 어린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용휘의 백일을 맞이해서 따뜻하고 맛있는 백설기를 마련해 주신 김승범 형제님, 류주미 자매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임 시간동안 아기들을 돌보아주신 김남근 형제님, 한수진 자매님 감사합니다. 식사를 준비해 주신 싱글조원분들, 그리고 찬양팀 여러분들도 감사합니다. 참석하신 곳에서 또는 참석하시지 못하셨지만 계신 곳에서 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10월 5일은 신입생 환영회로 모입니다. 많이 기도해 주시고 참석해 주셔서 저희들이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모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9월 17일 섬김이 모임

9월 17일 월요일 University Church에서 섬김이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 주는 "어떻게 복음서를 읽을 것인가"와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마지막으로 읽는 날이었습니다. 김남근 회종님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오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마지막 장을 비롯해 책 전체의 주제들을 복습하고 이어서 "하나님 나라는 나에게 무엇인가",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이것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솔직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운동 @ Stanford University"를 모토로 나아가는 저희 모임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들이 한없이 부족하고 다들 계신 곳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있지만 서로 방향을 공유하고 조율을 해나아가면서 "공동체" 속에서 서로 힘을 주고 이끌어 주며 나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같이 고민하고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9월 14일 싱글조 소그룹

9월 14일 금요일 저녁 GCC에서 싱글조 소그룹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8:12-30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도 바리새인들과 같은 질문을 예수님께 할 수 밖에 없음을 그리고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믿는 것이 어려움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저희들의 삶의 모습도 많이 반성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직장이나 학교, 연구실에서 건강, 인간 관계 문제로 힘든 일들이 있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교제 가운데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찾고 그 진리로 인해 평안과 소망을 얻고 교제 가운데에서 서로 힘이 되는 시간이 참 귀한 것 같습니다.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셨는데요. 이제 곧 학기가 시작하니까 곧 뵙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맛있는 저녁과 컵케이크를 준비해주신 이현옥 자매님과 최기현 자매님 감사합니다. 샬롬!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9월 10일 섬김이 모임

9월 10일 GCC Nairobi Room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섬김이 모임이 있었습니다. 몇몇분들이 사정 때문에 참석하시지 못했지만 요한복음 8:12-30 본문을 가지고 귀납적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과 다른 범주의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공부하면서 저희들이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처럼 이해 못하는 자들이 아니라 깨우치는 자들이 되고자 하는 열정으로 늦은 시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하시용 목사님과 전유찬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사정 때문에 참석 못하셨지만 계신 곳에서 섬김이 모임을 그리워하시고 기도로 함께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2012년 9월 9일 일요일

9월 8일 토요일에 이성진, 연민영 가정의 아기 요셉, 이은수, 이경민 가정의 아기 사랑이 베이비 샤워 했어요.


9월 8일 토요일 한가로운 점심 시간에 GCC Nairobi Room에서 이성진 형제님, 연민영 자매님의 아기 요셉이 - 예정일이 10월 중순이십니다. - 이은수 형제님, 이경민 자매님의 아기 사랑이 - 예정일이 11월이십니다. - 를 환영하고 축복하는 베이비 샤워가 열렸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 준비해주신 분들, 베이비 샤워 준비해주신 분들, 재미있는 게임 준비해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진 찍기 전에 떠나신 분들, 또 오시지는 못하셨지만 계신 곳에서 요셉이, 사랑이를 축복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한껏 멋을 내고 온 우리들의 개성 강한 멋쟁이 어린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언제 이렇게 저희 KCF에 이렇게 많은 상급을 허락하셨나,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언제 이렇게 자랐나 정말 깜짝 놀라기도 하고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싱글이 대다수였던 모임이 이제는 어린이들의 웃음 소리가 안 들리면 허전한 풍성하고 알찬 모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공동체에게 많은 은혜를 허락하셔서 영적으로 성장할 뿐만이 아니라 양적으로도 성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KCF가 이제 곧 보게 될 요셉이와 사랑이와 함께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스탠포드에서 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음 베이비 샤워도 기대해 주세요. 샬롬!

2012년 9월 7일 금요일

* 오늘(9월 7일)은 요한복음 7:53-8:11을 공부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예수님과 여인의 만남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잊어 버리기 전에 짧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7:53-8:11절의 핵심 메시지는 7장과 8장에서 벌어지는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간의 첨예한 갈등의 한 단면(예증, or illustration)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후대에 삽입된 본문으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7장과 8장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든 사건으로 오늘 본문을 읽었습니다.

감람산에서 밤을 보내신 예수님께서 새벽부터 성전에 앉아서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예수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는 시점입니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무리들 한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서 모세의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고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목청이 컸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압박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 한 가운데 한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다시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십니다. 무엇을 쓰셨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예레미야 17:13절을 연상시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대단한 위엄이요 존재감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과 땅에 쓰신 글씨의 위력은 예수님을 고소할 꺼리를 찾으려던 사람들의 입을 막았고 발길을 돌리게 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본문의 핵심메시지입니다. 이 정도라면 7장과 8장을 이어주는 사건으로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이름도 없는 여인은 본문에서 말 그대로 엑스트라일 뿐입니다. 군대용어로 교보재(교육용 샘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한숨도 쉬지 않고 예수님과 여인에게 초점을 맞춥니다.: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8:9)

예수님은 여전히 몸을 굽혀 앉아 있었고 여인은 서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켜서 여자와 자신만 있는 것을 확인하시고 여자에게 물으십니다.:”너를 고발하던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없었느냐?” “주님! 아무도 없습니다(아무도 저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대답하지요.

그때 예수님께서 여인의 존재를 흔드는, 여인의 행위 깊은 곳을 푹찌르는 그렇지만 거기서 용서와 사랑을 맛보는 말씀을 하십니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가라. 이제부터 다시 죄를 짓지 말라”(11). 논쟁의 한 가운데 군상처럼 서 있던 여인!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 돌에 맞아 마땅한 여인! –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의 전후 문맥을 보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여인이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챙기고 넘어가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 여인에게 자유의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이 한 마디에 여인은 녹아 내리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가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 여인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습니다. “죄가 용서의 빛 안에 드러날 때 그 죄는 우리를 호되게 꾸짖는다”(Karl Barth)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비는 하나님 쪽으로의 삶을 요구한다”(Bearsley-Murray).

예루살렘 지도자들과의 긴장이 계속되는 그 순간, 한 생명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이름 모를 여인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의 배려 그리고 사랑과 용서가 요한복음 7:53-8:11절을 공부한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도 울려 퍼지길 원합니다. –-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요한복음 2장 13-25절을 마치고

오늘 모임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모두 나누지 못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시간 조절을 잘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공부하면서 마지막 단상으로 나누고 싶었던 글을 이곳에 올립니다. 하목사.


예수님의 성전정화에 대한 말씀을 마치면서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본문의 주제 그대로 성전의 참된 의미 그리고 본래의 역할입니다. 성전을 오늘날의 교회로 바꿔 말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교회의 모습은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교회 본래의 목적에서 많이 빗나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질주의, 상업주의가 교회에 스며들어왔습니다.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행위들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돈을 바꾸는 것에서 보듯이 물질주의가 교회에 만연해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의 집을 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사무칩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면 채찍에 맞고, 쫓겨나고, 판이 뒤엎어지는 일을 그대로 당해도 괜찮습니다. 교회는 정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분노하셨듯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도 분명히 분노하실 것 같습니다.

“성전에 대한 남용 및 오용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잘못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가치없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엄숙히 제시하는 바입니다…사고파는 일이 성전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사람들의 주목적이 물건을 성전 안으로 가져와서 장사하는 데 맞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들이 번 돈으로 배가 불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참으로 순전한 남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양과 소와 비둘기 그리고 환전상들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게 된 이유입니다. 저들은 ‘그것이 만일에 기독교라면 우리는 그것에 흥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요한복음강해>-

둘째로,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성령님이 거하시는 우리들도 곧 성전입니다. Sanctuary – 즉 거룩한 성소입니다. 우리들 안에는 정화되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비본질적인 것들, 성전의 본래적인 모습에서 왜곡되고 나중에 스며들어온 부끄러운 모습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금 내 모습이 중요합니다. 우리들 역시 정화대상입니다. 스스로 정화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회개입니다. 청산입니다.

셋째로, 우리들 신앙의 대상인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인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청산하시는 예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지만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아집과 전통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가나혼인잔치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믿었습니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도 반응이 제 각각입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어디를 지향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아집과 전통을 지향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성전을 헐어버리시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시겠다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처럼 자신을 태우는 주님의 열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격렬한 대결에서 폭발하는 그 분의 마음의 열망은 아버지의 영예, 곧 성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의해 손상되고 있는 아버지의 영예에 대한 열심 때문에 더욱 불타오른다. (BST 요한복음 강해, 89>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서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셨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생명과 진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임을 기억합시다.

바로 전 본문인 요2;1-12에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은 축제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수님은 꽤 무섭습니다. 공의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말씀대로 충격적인 대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의로운 분노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성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밝히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우리의 신앙의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기 원합니다.

23-25절에 나오는 말씀도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하신 일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신용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믿다 (pisteuw)라는 동사가 세 번 반복됩니다. 1) 제자들은 믿었습니다. 2) 백성들도 믿었습니다. 3) 예수님은 백성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하시는 일을 보고 믿는 일종의 가짜 믿음을 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배신할 것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 그분을 메시야/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기도응답이 되는 여부에 따라서 믿음이 흔들리고, 여전히 소와 양 그리고 돈 바꾸는 것에 집착하는 신앙은 바뀌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표적을 넘어서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믿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려는 결단입니다. 그 분 앞에 잠잠히 무릎 꿇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신앙의 여정입니다.

2012년 3월 20일 화요일

3/19 섬김이 모임



3/19 섬김이 모임 사진입니다.
효근/은미 가정에서, 시은이 돌을 맞아 떡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수진 형수님께서 맛있는 유부초밥을 싸주셨네요-! (감동!)
현수형과 현진자매도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셨구요,
무엇보다, 영의 음식을 제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3/16 소그룹 모임 (오세관형제님 조)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관형제님 소그룹의 사진입니다.
이날은, 특별히 규원자매님, 윤하 어린이 생일잔치도 있었다고 하네요 :)
(무엇보다, 인상형제님, 호균형제님의 깜찍(죄송합니다)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ㅎ)

2012년 3월 18일 일요일

레위기 어떻게 읽을까?

레위기 어떻게 읽을까?

1. 소개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들고 지루한 말씀이 있다면 레위기일 것입니다. 레위기라는 영어title “Leviticus”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조금 더 멀리는 구약성경 희랍어 번역인 칠십인 역 (LXX)에서 왔고 레위인들과 관련된(relating to the Levites)”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1 1절의 첫 머리를 따서 바이크라, and he called”입니다. 레위기 1 1절이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레위기는 제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레위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1-15)는 희생제사(sacrifice)에 대한 법규이고 후반부 (16-27)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거룩해진 성별의 모습(sanctification)에 대한 말씀입니다. 특히 레위기 17-27장을 성결법전 (holiness code)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거룩한 백성의 삶의 양식들이 조목조목 나옵니다.

레위기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나눈 자료가 있어서 열심히 표를 그려서 옮깁니다 (17-26장의 성결법전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 단점이지만).

Leviticus at a Glance


Focus

Sacrifice

Sanctification

Reference

1:1 --------- 8:1  ------------ 11:1 ----------------16:1------------- 18:1 -----------21:1 ----------23:1 ---------25:1 ---------27 :1 ------27:34



Division

The Law of

The Law of Sanctification

The offering

Consecration
Of the Priests

Consecration
Of the People

National
Atonement

For the
People

For the
Priests

In
Worship

In the Land
Of Canaan

Through
Vows


Topic


The Way to God

The Walk with God

The Laws of Acceptable
Approach to God


The Laws of Continued
Fellowship with God
 Location
Mount Sinai

                                                                                                        Nelson’s Complete Book of Bible maps and Charts

레위기의 핵심구절을 찾으라면 19 2절이 될 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You shall be holy, for I the LORD your God am holy).결론을 미리 말씀 드리면, 레위기에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법, 규칙, 명령 등은 하나님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거룩함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기를 읽을 때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이라는 대명제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각종 법규에 신경을 쓰다 보면, 여러 가지 잡다한(?) 명령들에 얽매여서 은혜도 떨어지고 뭐가 뭔지 왜 이런 것이 있는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2. 희생제사와 제사장들
레위기 1-7장에는 성막에서 드려야 할 희생제사들의 종류와 각 종류에 따른 제사법이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폐지되었지만, 희생제사가 주는 핵심메시지는 죄 사함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용서함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8-10장은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이 정통으로 묘사됩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론 계열 후에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레위인들 같은 제사장 group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제사장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직분은 세습됩니다. 요즘도 세습에 동의하는 분들은 구약에서 목회자의 기원을 찾습니다 (글쎄요…). 제사장들은 지성소 (the holiest of the holy)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성결해야 합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성막에서 행해지는 희생제사와 이것을 집례하는 제사장들에게 신적인 권위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clean vs. unclean
11-15장은 성결에 대한 구체적인 법규들입니다. 실제로 성결(purity/clean)보다는 안성결(impurty/unclean)”에 대한 법규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정한 짐승들, 음식들, 관행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것들을 금지하는 법들은 유대교에서 상당히 발전을 해서 훗날 레위기 외에도 방대한 유대교 법전이 탄생됩니다. 탈무드도 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은 아니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예를 들면, 어린 송아지를 우유에 삼지 말라는 출애굽기 23:19 말씀을 바탕으로 유대교에서는 우유제품과 육류를 엄격히 구분해서 조리하고 보관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햄버거의 속살(고기)와 치이즈를 함께 먹지 않습니다. 요즘도 마켓에 가면 유대인들을 위한 “Kosher”음식이 있을 만큼 먹거리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습니다.
레위기에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출산과 부정한 질병에 이르기까지 Impurity에 대한 조항들이 세세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레위기를 읽는 우리들에게 방해가 되고 당황케 만듭니다. 뒤에 레위기를 읽는 tips에서 한번 더 언급하겠습니다.
부정한 것을 지칭하는 것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죽음입니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기에 짐승을 죽이거나 조리할 때 피를 모두 따라서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반대로 피의 제사를 드립니다. 생명을 드린다는 표시일 것입니다. 죽음은 대부분 부정합니다. 레위기 12장에는 아이를 출산한 여인에 대한 규례가 나오는데, 아들을 낳은 경우와 딸을 낳은 경우에 거룩함의 기간에 차이가 납니다. 레위기 15장에 가면 몸에서 유출되는 것이 부정하다고 말합니다. 몸에서 나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보았고, 그것은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딸의 경우 장차 유출이 있는 여성이 될 것이기에 아들보다 거룩함의 기간을 길게 설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지 추측일 뿐 성경에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There is no obvious reason why a woman should impure longer after the birth of a girl than that of a boy. -JJ Collins의 구약개론-).
레위기 16장에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아사셀이라는 염소에게 죄의 짐을 맡겨서 광야로 보내는 의식도 행하지요.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를 오르신 예수님을 연상케합니다. 17-26장은 성결법전이라고 했는데 여기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25장의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법규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안식년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희년정신에 대한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희년이 지켜졌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지금이나 구약시대나 인간의 이기심이 하나님의 희년(Jubilee)정신을 가로막았다고 생각됩니다. 희년 정신을 간직하고 그것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레위기 해석을 위한 tip
레위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말씀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도 물론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레위기는 하나님 백성들의 거룩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고대사회에 맞게 기록해 놓았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 레위기 가운데 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 구절이 꽤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의 옷을 입은 본문들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이라는 기준을 갖고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또는 확대 해석하면, 레위기에 없는 요즘 시대의 관행들도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에 위반된다면 금지해야 한다는 유추적용도 가능할 것입니다. 레위기의 각 조항들로부터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찾으려는 시도(bottom-up)보다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이라는 대명제하에 레위기의 세세한 부분을 해석해 가는 것(top-down)이 바람직합니다.
레위기의 부정한 짐승들이나 음식에 대한 이론이 학자들마다 제시되지만 명확한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 제의적인 부분 (돼지는 전통적으로 부정한 동물), 위생적인 측면 (돼지고기는 고대근동에서 쉽게 상함, 병을 전염시키는 짐승들)등이 제시되지만 성경에 근거했을 때 명확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그대로 남겨 놓는 것이 현명하고 솔직한 성경해석입니다.
5. 레위기와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에 포함된 피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단번(once and for all)의 죽으심으로 매년 드리는 속죄제사도 면제되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장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전형일 수 있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모두 이루시고 그를 통해서 우리들은 지성소,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사건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요 ( 15:38). 히브리서도 레위기와 예수님의 관련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6. 레위기가 요즘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할까?
레위기는 다루기 힘든 책입니다. 때로는 레위기의 조항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구약의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들 (전통 유대인들과 안식교)도 있고, 레위기의 말씀들을 allegorical하게 해석하면서 상징, 영적 의미, 신약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용하게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주관적인 면이 많습니다). 또는 지나치게 레위기를 경시하면서 그 안에 깃든 정신(하나님 백성의 거룩함)만을 취하려는 입장도 있습니다 (minimal results).
레위기는 하나님의 타자성, 초월성, 거룩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경배되어야 하고 (일정한 제의와 규칙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은 레위기의 세세한 덕목들을 지키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입고,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애써야 합니다. 물론 레위기에서 지킬 수 있는 법규들 (일반적인 것들)은 준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건전하고 훈련된 성경 해석자의 중요성이 대두됩니다.
레위기에는 거룩한 백성들이나 성막에서의 제의뿐만 아니라 거룩한 백성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법규도 나옵니다. 일종의 시민법규(civil laws)에 속하는 것들인데 이것도 지킬 것은 그대로 지키고, 때로는 현대에 맞게 modify해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정의에 대한 촉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 비즈니스나 직장에서의 정직한 직업윤리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또 한번 성경 본문 중심으로 잘 훈련된 성경 해석()의 중요성이 제기되지요.
신약성경에 나오는 죄사함과 의롭게 됨에 대한 신학적이고 추상적인 말씀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레위기에 나오는 희생제사 법규와 16장의 아사셀 염소등을 통해서 신약의 atonement에 대한 교리(doctrine)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실제의 삶을 다루는 구약성경은 신약의 교리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나가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Leviticus helps present an overarching view of God, humans, and the physical world. We need only note that the eschatological picture of how history concludes involves a reference to God’s holiness. For, on that day, even the bells on the horse and the inscriptions on the pots and pans will have emblazed on them: “HOLY TO THE LORD”(Zech 14:20). Leviticus is the book par excellence about this holiness. God remains the quintessence of holiness; and the deity’s creatures can hardly offer to be less in their aspirations and in their everyday conduct. –The New 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구약의 윤리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들은 크스토퍼 라이트의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 참고 하기 바랍니다.